VR (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머리에 장착하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인 HMD를 활용해 체험할 수 있다.
HMD(Head-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
2020년 ‘어이 주물씨, 왜 목형씨'의 주인공인 을지로 사장님들의 가게 5곳을 실제로 방문한것 같은 체험을 목표로 했던 영상콘텐츠 제작기
차가운 쇠붙이 문턱을 넘어
을지로라는 곳은 1년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제는 친숙하고 정겨운 사람 냄새나는 공간으로 느끼게 되었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는 세대 간의 벽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이제는 불투명하기까지 한 얇은 유리문 너머로 사장님들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이긴 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작업 의뢰를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사장님들은 나의 아버지뻘 되는 연세의 분들도 많아서, 은근히 거리를 두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그 유리문 사이로 보이는 사장님들의 눈빛과 포스 또한 강렬해서 선뜻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다.
영상으로 을지로 가게들을 담는 미션이 주어진 나에게는 그 사장님들이 불편하지 않으면서 어색하지 않게 영상으로 담는 것부터 큰 과제였다. 왜냐면 대부분 사장님들은 장사에 방해가 되거나, 풍겨지는 외모나 말투로 보아 분명 싫어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장님, 나중에 맛있는 거 사들고 올게요!’
양갱을 골라 드시는 을지로 사장님들
맛있는 것이라도 사들고 가서 인사하면 거절하지 않으실까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양갱을 사들고 일단 인사부터 드렸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지나가면서 이유 없이 ‘안녕하세요!’ 하면서 얼굴을 익히실 수 있게 소심한 인사를 드리며 다녔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나중에도 볼 수 있게 영상으로 사장님의 가게를 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흔쾌히는 아니지만 5곳의 허락을 받았다.
역시 촬영은 쉽게 되는 법이 없지
약속한 날짜에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팀을 꾸려 찾아갔다. 우리가 사용했던 카메라는 인스타 360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Titan 과 Pro2라는 제품이었다. 이 제품들 모두 하나의 제품에 여러 대의 렌즈가 내장되어 있어서 방향과 상관없이 주변의 모든 상황을 녹화할 수 있는 장비이다.
카메라로 담으려는 장면들의 연출의도는 의외로 간단했다.
-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
- 해상도는 최소 8K로 담아야 잘 보인다.
- 저조도인 부분은 조명을 세팅하여 보일 수 있게 한다.
- 현장의 소리를 잘 담아낸다.(앰비소닉)
- 최대한 여러 각도에서 사장님의 작업 모습이 잘 담기게 한다.
내장되어 있는 렌즈의 수에 따라 사양이 다른데 Titan이 제격이었지만, 제약조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을지로 가게들은 크기가 작고 좁아 사장님의 동선이 카메라와 너무 근접하다는 게 문제였다. 사장님이 렌즈에 너무 가까이 근접하면 화면이 울렁울렁 거려서 스티칭(렌즈 8대로 찍힌 이미지를 하나로 이어붙이는 작업) 후반작업을 할 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단계 하위 버전은 Pro2를 번갈아가면서 촬영했다.(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준비성ㅋㅋ)
신아주물 천장에 카메라 설치 장면
또 한 cut 당 대부분 5분 이상을 담을 수 없었다. 왜냐면 촬영할 당시 한여름이었고, 카메라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 5분이 넘어가면 발열이 너무 심해 강제로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카메라 렌즈에 끊임없이 내려앉는 작업 먼지를 계속 닦아내야 했다.
아이레벨에 맞추어 대우목형 카메라 높이 설정
조명을 숨겨 실내를 밝히고 카메라 설치를 한 한라금속
또 다른 문제도 발생했다. 을지로 사장님의 가게는 대부분 어두운데 비해, 밖은 너무나도 밝은 대낮이라 어느 쪽에 맞춰도 조도가 너무도 달라 하얗게 날아가는 부분이 생겼다. 그래서 카메라 위치는 그대로 두고 안과 밖의 조도에 맞춰서 두 컷씩 촬영해서 후반작업으로 이어붙였다.(이건 작업자가 아니면 아무도 몰랐던 사실) 그렇게 3번의 현장 촬영을 마치게 되었다.
원옥철강상사 사장님과 VR 촬영을 함께 한 멤버들
드디어 전시 오픈!
후반작업의 대부분은 스티칭 작업과 색보정에 투자했다. 처음에는 5개의 부스에 각각의 가게를 15분씩 담기로 이야기가 되었지만, 막상 만들고 보니, VR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15분 정도의 한 가게 영상을 보게 되어 지루함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 VR 기기가 5대밖에 준비하지 않아 빠른 로테이션이 안될 것 같았다.
- 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그래서 5가게를 통틀어 5분 정도로 짧게 편집하여, 지루함과 로테이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지루함을 느끼기 전에 HMD를 벗을 수 있게 유도했다.
브랜드와 문화디자인팀이 아름답게 제작해 준 공간에 5개의 VR을 설치했다. 어지러움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의자를 준비했고, 전시장 소음에서의 독립을 위해 헤드셋도 준비했다. 그리고 현장 스텝들이 방역에 필요한 1회용 마스크와 기기 소독을 계속 도와주었다.
현장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VR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이 많았고, 한번 관람하는 사람이 영상이 끝나기 전에 벗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관람하는 대기 줄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 대 정도 더 구입할 걸 그랬다.
끝으로 가장 행복했던 관람 소감을 하나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신아주물의 김학률 사장님이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재개발로 신아주물을 어쩔 수 없이 이사하게 되었고, 그게 너무 속상했었는데, 20년 넘게 아끼던 공간을 내 머릿속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었는데 , 이렇게 내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서, 순간 가슴이 뭉클하더라고. 나한테 이 영상 꼭 보내줘. 그리고 진짜 고마워"
전시의 성공 여부를 떠나 붉어진 눈시울로 내 손을 잡던 김사장님의 거친 손길을 느끼러 조만간 신도림에 방문해야겠다.